조건형성외 학습 썸네일 이미지

이전 포스팅에서는 조건형성을 통한 인간의 학습 양상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조건형성이 인간의 학습을 완전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죠? 왜냐하면 인간은 직접적인 강화물의 경험 없이도 얼마든지 학습을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건형성 외 학습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방학습

가. 모방학습의 개념

원숭이들이 다른 원숭이들의 어떤 특정 행동을 할 때마다 당하는 고통을 관찰하면서 그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물론 인간만큼 신속하고 정교하지는 않더라도 말이죠.

이러한 형태의 학습을 모방이나 관찰학습(modelling or observational learning) 또는 대리학습(vicarious learning)이라고 합니다. 이 분야의 대가인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는 아동이 혼자 남겨졌을 경우, 어른이 보보 인형을 발로 차고 때리는 모습을 본 아동이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그 인형에 대해 유사한 공격적 행동을 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그 어른이 자신의 부모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 혹은 권위가 있는 사람일수록 인형에 대한 공격 행동의 가능성이 더 증가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러한 간접 경험들은 상당 기간 축적되면서, 즉시적인 행동의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인 가치관이나 관점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데요. 학습은 ‘행동의 변화’를 포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인간의 학습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음을 의미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행동의 변화 없이도 학습은 우리 내부에서 꾸준히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거울뉴런

이탈리아의 신경심리학자 리촐라티(Giacomo Rizzolati) 교수는 1990년대에 자신의 연구진과 함께 원숭이에게 다양한 동작을 시켜 보면서, 그 동작들을 취할 때 뇌의 뉴런이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에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움직일 때와 마찬가지로 반응하는 뉴런들이 관찰된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직접 할 때와 내가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보거나 듣고만 있을 때 동일한 반응을 하는 뉴런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는 인간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본질적인 해답을 줄 수도 있는 발견일 수 있다면서 이러한 뉴런을 거울뉴런(mirror neuron)이라고 불렀습니다.

거울뉴런은 뇌의 어느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지만 핵심적 기능은 동일합니다. 관찰 혹은 다른 간접 경험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 일을 직접 하고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다. 거울뉴런의 쓸모(북극의 에스키모)

왜 이런 거울뉴런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 내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의사소통하면서 생활해야 합니다. 따라서 타인의 의도를 파악 하고 공감하기 위해 언어 등 의사소통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러한 의사소통이 축적되면 이른바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면? 혹은 그것에 맞게 진화해 나가야 한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겠죠.

예를 들어, 북극곰은 북극에서 극한 추위를 견뎌야 하므로 털로 자신의 몸을 감싸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몇 만 년의 진화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에스키모인들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북금곰의 모습을 하고있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털로 온몸을 감쌀 필요가 없을까요? 어린아이도 아는 대답이겠지만 털 옷을 입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에스키모 아이들은 곰을 잡아 털옷을 만드는 부모를 보고 단 10분 만에 이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털옷을 만들어 입어야겠다.’ 라고 말이죠.

아마도 부모가 털옷을 만들어 입는 그 순간, 그 아이의 뇌에 있는 뉴런들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따뜻함을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이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극곰의 수만 년과 에스키모 아이의 10분. 연약한 육체를 지녔으면서도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이 지구에서 중심적 지위를 누려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추측마저 가능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혐오학습

가. 혐오학습의 개념

토하기, 재채기, 근육의 순간적 움직임 등의 무조건 반사와 같은 행동과 같이 많은 시행과 그에 따른 강화의 제시가 전제되는 조건형성 원리와는 달리 학습은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가능합니다.

빨거나 움켜잡는 등의 반사적 행동을 유아가 성인보다 더 활발하고 다양하게 한다는 것을 보면 오히려 무조건 반사는 타고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인이 되어 가면서 점차적으로 이러한 반사적 행동들이 사라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반사적 반응을 만들어 내는 사건들은 단 1회의 경험 만으로도 평생에 걸쳐 기억에 남아 이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학습의 효과를 지니게 됩니다.

유아는 여러 가지 반사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상당수가 사라진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반사의 기능이 유아의 생존에 필수적인데, 진화론에서는 적응기제로 선택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 유전적 준비성

사람이든 동물이든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전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경향을 준비성이라 하는데,  어떤 것은 아주 쉽게 학습하는 반면 다른 것은 아주 어렵게 학습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으로서, 생존에 필수적인 맛의 감별과 같은 것은 극히 높은 준비성으로 인해 단 한 번의 학습으로도 각인되는 수준의 효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잘 준비된 행동들은 한두 번의 학습으로도 조건형성이 잘 되지만, 준비성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중립적인 행동들은 수많은 연합의 경험과 그에 따른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 혐오학습 사례

이를 잘 보여 주는 예가 특정 음식을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떤 음식에 대한 혐오를 심층 있게 연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존 가르시아(John Garsia)라는 심리학자입니다.

가르시아는 쥐들에게 보통 물과 단맛 나는 물을 제공하여 골라 먹도록 하였는데 당연히 쥐들은 단맛 나는 물을 좋아하고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후 가르시아 교수는 쥐가 단맛이 나는 물을 마실 때마다 구역질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는 감마 방사선에 노출시켰습니다. 그 결과, 쥐들은 단맛을 회피 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노출된 방사선 수준이 높을수록 단물에 대한 혐오 반응이 심했습니다.

이를 ‘조건화된 맛 / 미각 혐오 반응 (conditoned taste avesion)’ 이라고 부르는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단맛과 방사선의 연결이 단 한 번만 이루어진 경우에도 이러한 맛 혐오 현상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이러한 혐오학습을 통해 매우 슬기롭게 골칫거리를 해결해 내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에 방영한 KBS의 환경스페셜 100회 특집 〈공존 실험: 까치> (2001년 10월 3일)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까치가 말썽을 피우는 배 과수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조치로, 과수원 주인으로 하여금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까치들에게 배 조각을 먹게 합니다. 이후 배 속에 약품을 넣어 구토를 일으키게 하는 전형적인 맛 혐오학습의 과정입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까치는 결국 배를 피하게 되며, 과수원 배 나무에 달린 배 근처에도 가지 않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까치를 사살하거나 추방 하는 것이 아니라, 과수원의 배만 건드리지 않게 하는 꽤 지혜로운 인간-동물 공생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통찰학습

가. 통찰학습 개념

인지학습(cognitive learning)이란 가시적 또는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심리적 과정, 특히 인지적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제반 학습 형태를 칭하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통찰학습(insight learning)입니다.

여기에서 통찰(insight)이란 문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는 현상인데요. 시행착오적인 무선적 반응의 반복이 아니라 환경의 자극 요소들을 유의미한 전체로 관련짓고 의미있는 인지 구조를 형성하는 통찰에 의해 학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는 학습이 단순히 반응의 변화만이 아니라 지식이나 내적 과정의 변화라고 하는 보다 통합적인 입장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따라서 통찰학습에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의식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통합적 이해 등의 능동적인 정신적 과정이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나. 통찰학습 연구

이러한 통찰학습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독일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Wolfigang Kohler, 1887~1967)입니다. 20세기 초중반에 활발한 연구 활동을 했던 쾰러는 문제 상황에서 한참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다가 갑자기 문제가 해결되는 통찰학습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를 수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쾰러는 자신의 실험에 침팬지를 사용했는데, 침팬지가 당면하게 되는 상황은 찬가지로 손을 아무리 뻗어 봐도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바나나가 닿지 않는 공간입니다.

배고픈 침팬지는 어떻게든 천장에 매달린 바나나를 따 먹어 보려고 팔짝팔짝 뛰어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바나나를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그다음에 침팬지가 보이는 행동들은 다소 우습기도 한데요. 한쪽 구석에 가서 시무룩하게 바나나를 노려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다소 짜증 섞인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침팬지는 주위에 있는 상자들을 바나나 밑으로 옮기기 시작하고 그 상자들이 바나나에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있는 높이로 쌓이게 되면 그 상자들 위로 올라가 바나나를 자신의 손에 넣게 됩니다. 얼핏 그 모습은 우리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일단 문제를 한번 해결해 놓고 나면 이후에는 같은 문제 상황에 처하더라도 효과가 없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전에 이런 상황을 많이 경험해 본 것처럼 너무나도 능숙하게 상자를 바로 쌓아서 바나나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죠.

다. 통찰의 경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침팬지가 바나나 따 먹기에 필요한 일련의 과정을 하나하나씩 해당 공간에서 연합적으로 학습한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전에 상자를 옮기는 행동, 상자를 쌓는 행동들, 그리고 무언 가에 올라가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에 손을 뻗어 본 행동들을 이미 경험해 보았기 때 문에 현재 주어진 상황에 전체적인 상황을 하나로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찰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즉, 쾰러의 실험에서처럼 침팬지들이 모두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을 보는 것은 아니며, 쾰러의 실험에 참가한 침팬지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상자를 나르고 쌓으며 높게 쌓은 것의 의미 하나하나를 모두 예전에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통찰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이런 순서로 ‘연결’되지만 않았던 것뿐이죠. 즉, 어떤 문제 상황을 만났을 때 그 상황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전에 경험한 개별적인 행위나 대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이 통찰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이러한 통찰을 통해서 새로운 학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맺음말

인간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현상들과 사건을 경험하고, 그것들 중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연합을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이를 타고난 행동들과 연결시켜 가면서 보다 더 복잡한 체계를 형성해 나가고요.

이러한 일련 의 과정들을 반드시 직접 경험할 필요 역시 없는 듯하다. 왜나하면 관찰과 모방이라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여기에는 관찰 대상이 지니는 권위나 신뢰성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합니다.

우리의 성격과 지식 체계, 더 나아가 우리의 문화가 바로 이렇게 만들어져 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만들어져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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